[한겨레][함께하는 교육] 홈스쿨링 어떻게

홈스쿨기사



[한겨레][함께하는 교육] 홈스쿨링 어떻게

행복한홈스쿨 0 1,874 2013.06.03 23:27
[한겨레][함께하는 교육] 홈스쿨링 어떻게

오디션 프로그램 SBS '케이팝스타2'에서 우승한 악동뮤지션이 몽골에서 홈스쿨링을 했다고 해 화젯거리가 됐다. 홈스쿨러들은 "막연히 집에서 자유롭게 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만족스러운 홈스쿨링의 필요조건을 알아봤다.

"평일 오전이잖아요. 학교에 있으면 엄마랑 둘이서 이렇게 천천히 박물관을 둘러보는 게 어렵죠."

엄마 김영혜(44)씨가 '박물관 견학 소감'을 말하며 아들 김선호(16)군에게 미소를 보낸다. 김군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난 5월2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고조선실. 김군한테 이 전시실은 각별한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9년 이 전시실이 개관했다. 김군은 그해 '100회 이상 우리나라 박물관 관람'을 한 학생이었다. 햇수로 5년 뒤 1년여 동안의 홈스쿨러 생활을 하면서 김군한테는 '고고학자'라는 꿈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해온 박물관 활동이 학교 구실을 해줬다.

어떤 책 보니 학력 낮은 부모가
성공 확률이 더 높다더라
공부 잘했던 부모일수록
아이한테 기대치가 커
상처만 주고 틀어질 수 있다
전문 지식보다 중요한 게
부모의 정신·육체적 건강이다


아이한테는 '관리' 아닌 '관심' 필요

김군이 사는 곳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새벽 6시께 일어나 남한산성 부근에 있는 텃밭을 일구는 게 하루 시작이다. 텃밭 일구기와 도서관에서 검정고시 준비하기는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비올라 가르쳐주기, 그림 그리기, 인문·환경·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 있는 강좌 듣기 등도 한다. 올해 초에는 <열네 살 농부 되어보기>(들녘)라는 책에 일러스트를 그려 작가 데뷔도 했다. 매일 플래너를 들여다보며 알찬 하루를 보내는 김군은 홈스쿨러로 사는 삶에 만족한다.

1년 전만 해도 김군의 모습은 달랐다. 학교를 뛰쳐나온 건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4월19일. 교우관계로 벌어진 사건을 놓고 교사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했던 게 계기가 됐다. 홈스쿨은 '갑자기 닥친 일'이었다.

홈스쿨러의 홈스쿨 이유는 '수능만으로 대학에 가려고', '학교 시스템이 싫어서', '가족공동체 안에서 부모의 교육관에 맞게 다양한 교육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등 다양하다. 김군은 둘째 경우다. 이 경우엔 상처 치유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군은 "내 경우엔 농사가 치유 기회를 줬다"고 했다. 엄마를 통해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농사 관련 수업을 알게 됐고, 직접 텃밭농사까지 해봤다. 가뭄을 걱정하며 텃밭에 매일 물 주는 일을 하면서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바라보고, 힘들었던 학교생활과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봤다.

만족스러운 홈스쿨러 생활에 엄마는 '필요조건'이었다. 김군한테 엄마 김영혜씨는 주변 관심 분야의 좋은 멘토를 소개하는 징검다리다. "선호야. 이런 강의 있는데 같이 들어볼래?" 제인 구달 박사, 최재천 교수 등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엄마 김씨는 "아이한테 '관리'가 아니라 '관심'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음 김군이 홈스쿨러 생활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부지런히 대안교육공간, 홈스쿨링 경험이 있는 이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김씨는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하나였다"고 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홈스쿨은 아이들 각자의 개별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내 아이를 잘 아는 것'이라고요. 그 말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대안적 울타리' 찾는 경우도 있어

"저는 학교를 나와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바리스타를 꿈꾸게 됐습니다. 꿈이 생긴 뒤로는 검정고시 보고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5월15일, 성남시 보평중 3학년 6반 교실. 한 여학생이 "학교 안 다니면 뭐해요?"라고 묻자 김종호(18)군이 이렇게 답했다. 이날 김군은 대안교육공간 '민들레'가 학교에 찾아가 여는 '청소년 자기 길 찾기 프로젝트' 수업을 돕는 활동을 했다.

김군은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다. 고민이 있어서 상담을 요청하면 늘 똑같은 결론만 알려주는 학교가 실망스러웠다. "늘 '그러니까 대학 갈 때까진 참아'가 답이었죠."

늦잠자기, 피시방 가기 등 학교 밖으로 나오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건 사흘 만에 하고 싶은 만큼 다 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막막해졌다.

홈스쿨러 중에는 민들레, 하자센터, 나다 등 '대안적 울타리'를 찾는 아이들도 많다. 김선호군이 부모와 밀착해 소통한 것처럼 김종호군한테도 그럴 사람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곳이 민들레였다. 1년 동안 학습회원을 하면서 다양한 수업도 듣고, 홈스쿨러로 지내는 친구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대안적 교육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안 보이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리스타가 되어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민들레 주변에 있는 커피숍 '아비오'(AVVIO) 주인 유태성씨한테 찾아가 "일을 배우고 싶다"고 용기를 냈다. 지금은 검정고시학원 등을 다녀오면 거의 매일 이 커피숍을 찾아 설거지, 서빙 등을 하며 일을 배우는 중이다.

'가족공동체' 위해 '이사' 선택하는 일도 많아

지난 5월20일 오후 2시.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탄현문화센터에선 이 지역 기독교 홈스쿨러 품앗이 '고래학교'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 가정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교육관과 철학에 맞게 다양한 교육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홈스쿨을 택한 경우다. 열 가정으로 구성돼 올해 3월 결성됐다.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다. 각자 집에서 개별적으로 공부를 하되, 유치반, 초등 저·고학년반, 중등반 등으로 나눠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공부한다. 엄마들이 홀로 가르쳐야 하는 부담도 덜고, 아이들한테 또래 친구, 또다른 형제자매를 사귈 기회도 준다.

이 모임에는 홈스쿨을 위해 '퇴직', '이사'라는 과감한 결정을 한 엄마들이 있다. 비교적 자녀가 어릴 때 홈스쿨링을 시작할 경우, '외벌이'는 필수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가계 수입의 절반 정도는 과감히 버릴 용기도 필요하다.

'미지맘'(38·닉네임)씨는 17살 딸, 15살 아들과 2011년 홈스쿨을 시작했다. 학부모회 회장까지 할 정도로 학교 참여가 활발했던 터라 홈스쿨링 결정 뒤 주변에서 무척 궁금해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엄마가 하던 가게를 접고, 살던 인천에서 일산으로 이사한 일이다. 일산은 문화시설도 많고, 홈스쿨러도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면서 맞벌이를 포기했다. 홈스쿨링을 하려면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데 직장에 나가면 힘들기 때문이다. 연간 가계수입은 8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줄었다. 38평짜리 내 집에서 24평짜리 전세로 옮겼다. 미지맘씨는 "생각을 바꾸면 가능해진다. 돈보다 중요한 게 가족공동체의 끈끈함과 대화, 소통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홈스쿨러 부모에 대한 오해와 환상도 많다. 부모가 부지런해야 할 것 같다는 지레짐작도 이 가운데 하나다. 쌍둥이 동생 황지혜(41)씨를 따라 지난해부터 홈스쿨링을 하게 된 황은혜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지런하지 못해서 홈스쿨링 못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돌발적인 상황을 즐길 줄 아는 부모들한테 잘 맞는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 계획들 아래 지나치게 정해진 일정대로 사는데 때론 지루하게, 때론 돌발적인 활동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할 줄 알아야 이 생활을 잘할 수 있다."

홈스쿨러 부모한테도 고비가 있다.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보내는 탓에 늘 좋은 엄마로만 남아 있을 순 없다. 지지고 볶고, 싸우는 일도 많다. 7년째 홈스쿨을 하고 있는 임수진(41)씨는 "홈스쿨은 자녀 앞에서 벌거벗은 입장인 거나 다름없다. 처음엔 자녀 문제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내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다"고 했다.

홈스쿨러 엄마는 특별할까? 임수진씨는 "내가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했었다. <홈스쿨링>(규장)이라는 책에서 '학력이 낮은 부모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 공부 잘한 부모일수록 아이한테 기대치가 크고, 왜 이만큼 못하느냐고 상처만 주고 틀어질 수 있다.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 요즘 학습지가 잘 나와 누구나 다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황지혜씨는 "흔히 홈스쿨을 하면 엄마가 교대라도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전문 지식보다 중요한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부모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진학, '인서울'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홈스쿨러가 가장 고민하는 시기는 고교 진학을 앞뒀을 때다. 입학사정관제 등이 나오면서 홈스쿨러도 대학 가는 길이 넓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김문주(17)양은 '초딩 때 대안학교, 중딩 때 홈스쿨러' 생활을 하고, 올해 평촌고 1년으로 진학했다.

경험한 적 없는 '공교육'이 궁금했고, 한국무용 분야로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양은 "홈스쿨러로 대학 진학을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이른바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 진학)은 어렵다고들 한다"고 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검정고시 출신을 좋게 바라보지 않는 경향이 있어 1차 서류에서부터 배제되는 일도 많다. "성공회대 같은 경우는 진학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흔치는 않더군요. '악동뮤지션'처럼 연예, 예술 분야면 모르지만 대학 공부가 중요한 분야로 진출할 거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애초에 '스카이'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목표이면 학교에 머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김청연 기자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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