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필자로서도 강연가로서도 하수 축에 속합니다. 신문 잡지에 글을 쓸 때는 원고 분량을 넘치게 쓰기 일쑤고 강의는 예정 시간 내에 마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까닭에서입니다. 저는 제 글 몇 줄이, 제 말 몇 마디가 독자와 청중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결코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으며, 기껏해야 드넓은 들판에 한 동이의 물을 뿌릴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물 뿌린 자리만 잠시 촉촉하다가 햇볕이 내리쬐면 눈 깜짝할 새에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렇듯 저는 누구보다도 말과 글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번번이 욕심을 부립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뿌리고 싶어 편집자에게 원고를 덜어내는 수고로움을 주고 청중에게는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불편함을 줍니다.
인지상정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영향력을 발휘하길 기대합니다. 그러하지 못했을 때 상실감을 느낍니다.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좌절감과 상실감의 표현을 화라 합니다. 상실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리하여 화가 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말할 때 힘이 들어가고 또한 말이 길어집니다.
이런 경험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특히 엄마라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일이니까요. 엄마는 매일같이 아이를 대상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몇 번을 똑같은 말을 해도 아이의 행동은 좀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좌절감과 상실감을 맛보며, 그것이 분노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을 치는 공격적인 분노 표현을 하기도 하고, 너무 지쳐 무력해지는 변형된 분노에 이르기도 합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화법을 강조합니다. 수많은 말이 잔소리가 되어 아이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부모들에게 대화법을 배우고 익히라고 말씀드립니다. 나의 말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좌절감과 상실감이 화의 근원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대화법을 배워 말을 제대로 하라고 권해드립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이 이해하고 동의를 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대화법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다가 책에서 배운 대로 말을 해도 아이의 대답과 행동은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과 다르니까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 공감을 말로 표현하면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지만, 그리하여 당장 아이가 행동을 바꿀 줄 알지만, 그렇게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의 95%는 무의식이 차지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결정에서 인륜지대사인 결혼에 대한 판단마저도 무의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섣부른 기대를 합니다. 공부할 때 조금만 더 집중해주지, 엄마가 한두 번만 얘기하면 좀 알아듣지 왜 했던 얘길 또 하게 만들까, 덤벙대지 말고 좀 침착하게 행동을 하지, 계획을 좀 세우고 행동을 하지, 한번 하기로 한 것을 끝까지 해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기대는 언뜻 사소해 보여도 실은 아이의 두뇌를 바꾸어야 가능한 것들입니다. 차라리 부모가 아이에게 적응하는 편이 더 쉽고 빠릅니다.
자식을 바르고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녀교육서를 읽고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은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비현실적인 기대는 아이와 부모를 모두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부모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아이가 확 바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배운 지식을 적용하려 할 때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한 마디의 말로 아이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말은 없습니다.
엄마의 눈에 못마땅한 아이의 행동이 과연 꼭 바꾸어야 하는 것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많은 것을 바꾸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마저 바꿀 수 없게 됩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는 엄마의 기대가 실은 한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것, 좋은 습관을 갖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단번에 바꿀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순간 찾아오는 좌절감과 상실감에 자칫 엄마의 영혼마저 위태해집니다.
자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바꿀 수 없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이의 지혜입니다. 저는 비록 신을 믿지 않지만 니버(Nieber)의 다음과 같은 기도문만은 가슴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용기를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
가을 하늘이 참 맑습니다. 모두들 여유롭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