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도와주는 엄마, 공부 포기하게 만드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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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도와주는 엄마, 공부 포기하게 만드는 엄마

네아이아빠 2 1,802 2011.06.21 22:10
도현이 엄마는 아이를 집에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도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년 동안 직접 가르쳐봤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공부하는 자세와 태도가 못마땅해서 잔소리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주말, 수학 문제집을 풀며 시험 대비 공부를 하다가, 쉬운 문제를 줄줄이 틀리는 도현이에게 심하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혼자서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화를 내는데도 아이는 별로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무기력하게 듣고만 있었던 거죠. 그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힘들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무런 학습의욕을 느끼지 않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 일 이후로 엄마는 도현이를 직접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수학학원을 등록하여 다닌 지는 1년이 넘었고, 지금은 다른 과목도 가르치는 전 과목 보습학원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현이네 사례는 거의 모든 집에서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 엄마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아이와의 갈등이 심각해집니다. 몇 번을 가르쳤는데도 또 틀리니 화가 날 수밖에 없겠죠. 저 역시 아이를 지도해봐서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미 수차례 충분히 가르쳤는데 번번이 틀리는 이유를, 엄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왜 가르칠 때 집중하지 않느냐고 야단을 치게 됩니다. 틀린 문제를 두고 엄마가 야단을 치면 대개의 아이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지요. 스스로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니까요. 왜 나는 이런 문제만 나오면 틀리는 걸까, 분명히 몇 번 배운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모르는 걸까, 역시 내 실력으로는 이런 문제는 풀 수 없나 봐.

엄마가 가르치려 한 것은 집중하는 자세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이해하여 다음에는 그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가 배우는 것은,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입니다.

이와 같이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생긴 무기력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없었던 무기력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학습된’ 무기력이라 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아이들은 틀린 문제를 앞에 두고 무기력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학습된 무기력은 공부의 최대의 적이며, 공부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꽤나 오래 가는 정신적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학을 못해, 나는 영어가 약해, 나는 이해력이 부족해, 난 창의력이 없는 것 같아, 어릴 때 생긴 이러한 생각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생 지속됩니다.
 
도현이는 배우지 않은 문제가 나오면 노력하여 해결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는 문제가 나오면 기계적으로 풀어내지만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평소 문제집을 풀 때 문제 번호 위에 ‘심화’ 또는 ‘난이도 상’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일단 건너뛰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의 설명을 기다리든지 해답을 봅니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열을 내며 반복하여 가르친 문제라도 학교 시험에 나오면 별표 표시한 한 채 건너뜁니다. 이미 머릿속에 이런 문제는 시도해봐야 풀리지 않을 게 뻔하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옆에 있어 도와주면 아이는 문제 해결의 자신감이 생기고 공부 의욕이 생겨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엄마로 인해 오히려 학습 의욕과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엄마는 아이 공부의 평가자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쉬운 문제를 틀리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또 틀렸니?’ ‘몇 번을 가르쳐줘야 이해하겠니?’ ‘지난번에 다 설명했잖아. 설명할 때 제대로 들었어야지.’ ‘왜 내 말에 집중 안 하니? 그러니까 계속 틀리잖아!’ ‘엄마가 설명하는데 어디 보니? 똑바로 안 앉아?’ ‘넌 자세가 틀렸어.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푸니까 그렇잖아.’ 이런 말을 반복해서 듣는 아이에게 자신감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이렇게 바꿔 말해봅시다. ‘지난번에 엄마와 함께 풀어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나 보구나.’ 아이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 말입니다. 엄마의 모든 말은 아이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기억이 났으면 풀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틀린 것이구나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아이는 일부러 틀리지는 않으니까요. ‘아, 이런 문제를 어려워하는구나.’ ‘이런 문제를 주로 실수하는구나.’ 이것은 감정을 섞지 않고 사실만 말하는 방법입니다. 아이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자세를 탓하지 말고, 이런 유형의 문제를 어려워하는 현재의 사실만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쁜 감정을 섞지 않고 말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말에 나쁜 감정이 지나치게 섞여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서는 엄마는 결코 공부 조력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공부 평가자가 아닌 조력자가 되는 법은 나쁜 감정을 섞지 않고 말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ㅣ손병목ㅣ 부모2.0 대표 | 행복한 학부모 포털 부모2.0 www.bumo2.com 

Comments

당근 2013.01.31 03:00
‘지난번에 엄마와 함께 풀어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나 보구나.’
‘아, 이런 문제를 어려워하는구나.’
‘이런 문제를 주로 실수하는구나.’ 이것은 감정을 섞지 않고 사실만 말하는 방법입니다.
 아이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자세를 탓하지 말고, 이런 유형의 문제를 어려워하는 현재의 사실만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마음판에 새겹봅니다 둘째야~~~
사랑의열매맺기 2021.01.10 17:43
와.. 진짜.. 너무 공감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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