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잡지에서 흥미 있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초보이지만 열의가 넘치는 부모로서 아이를 낳기 전 이미 여러 권의 육아서적을 읽고 정신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육아서적이 내리는 처방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아가를 안아서 재우지 말고 혼자 자도록 훈련하라. 젖을 먹여 재우지 말라, 아가가 울더라도 무조건 달래주지 말라. 이런 말들은 책으로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막상 눈앞에 실물로서의 아가와 현실로서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실천하기에 만만치 않다. 분명 그의 글에 공감하는 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육아서적의 저자들은 모두 이상주의자들일까? 아이라곤 제대로 키워보지 않고 이론적인 말을 나열한 사람들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적어도 최근에 나오는 육아서적의 조언들은 탄탄한 과학적 실험과 체계적인 관찰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실 육아서적의 지침을 따르기 어렵다는 불평은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경영자치고 직원 관리에 대한 책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영자는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배신하여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결국 직원들의 원성을 산다.
우리 모두에게는 본능이 있고, 피곤함이 있으며, 콤플렉스로 오염되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이 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좀 쉽게 가고 싶다. 시끄러운 것은 대충 멈추고 싶다. 게다가 아기 아닌가? 아기야 단순한 욕구만 충족시키면 조용해진다. 장기적으로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든지 일단 우리는 당장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싶다. 그뿐인가? 우리는 피곤하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하고, 밤에 와서 할 일도 아이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낮시간의 일들로 지친 우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하루의 시름을 달래고 싶다. 그런데 아이는 협조하기는커녕 내일의 안녕을 위협할 정도로 울고 있다. 이것을 견뎌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울음은 우리에게 불안을 유발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적지 않은 부모가 내면의 흔들림을 경험한다. 특히 자신도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부모라면, 현실의 강퍅함에 질려 있는 부모라면 아이의 울음에 깊게 감정을 이입한다. 아이의 울음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 행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장 멈춰주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때 아이의 울음은 더 이상 아이만의 울음이 아니다. 부모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욕구이고, 어린 시절이고, 힘든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다.
결국, 아이의 울음을 견뎌내기 위해서 우리가 이겨낼 적들이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아이 키우기는 정답을 꼭 맞혀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은 백점을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과 아이를 위해 원칙을 갖고 오늘 좀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아침이면 거울을 보고 겉모습을 가다듬듯 육아서적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를 비춰서 돌아보게 하는 기준이다. 거울을 본다고 내 모습을 다 바꿀 수는 없듯이 육아서적을 본다고 다 실천할 수는 없다. 완벽히 실천 못 하겠다고 토라져서 버릴 필요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진다면 나아진 만큼 나도 아이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이고, 그 정도를 돕는다면 육아서적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이다.